담배 한 개비

작은 책방을 하고싶은 이유

못 말리는 카레왕 2024. 2. 9. 13:26

요즘 난 책방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다. 책도 책방 관련 책들만 읽고 있다. 책을 읽다가도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 책 읽는데 방해가 된다. 운전을 할 때도 자려고 눈을 감아도 온통 책방 생각뿐이다. 그러나 막상 하려고 하니 이것저것 걸리는 게 많다. 그리하여 책방을 하고 싶어 안달 난 나'(이하 책안나)와 '겁이 많은 나(겁나)'는 토론이 시작된다.



 겁나 책 유통구조와 마진을 따져보면 책을 팔아 돈을 번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
 
책안나 열심히 하면 넉넉한 생활을 영위하진 못하더라도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지 않아?
 
겁나 아직 우리 어린 자식들을 좀 봐. 좋아하는 일만 하고는 사는 건 무책임한 일이야!
 
책안나 너도 알잖아. 우리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모두 실행력이 뛰어나. 무언가 하고 싶을 때 이것저것 다 재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겁나 우린 원래 신중한 사람이잖아. 그게 우리의 단점이지만 장점이기도 하고. 사람은 원래 생겨먹은 대로 살아야 해.

책안나 우리 나이가 벌써 사십 대 중반이야. 언제까지 신중하게만 살 거야? 그리고 너도 알다시피 우린 신중하다기 보단 겁이 많은 거야.

겁나 잘 생각해 봐. 요즘에 길에 다니다 보면 전부 카페지. 그 사람들이 카페를 하는 이유가 뭐지? 커피를 좋아해서? 아니, 커피 맛만 봐도 알잖아. 주변에 누군가에게 “난 분위기 있고 멋진 카페를 하면서 살아. “라고 말하고 싶을 뿐이야. 남들이 보기엔 근사하게 산다며 스스로를 부러워할 거라  착각하지. 그리고 막상 가게를 열면 알게 돼. 난 커피 맛을 알지도 못한다는 걸. 더 중요한 건 그게 전부가 아니란 거야. 마케팅부터 회계, 경영 전반에 대한 학습도 중요하지. 진상 손님을 대처하는 방법, 손님을 대하는 태도까지.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숱한 어려움들이 있다고. 더 큰 문제는 스스로 뭐가 잘못되었는지 모른다는 거야. 그러곤 경기가 안 좋다는 핑계를 대. 가만히 앉아 줄담배만 피워가면서 말이야. 말이 좀 길어졌네. 핵심은 네가 남들 보기에 근사해 보이니까 책방을 하고 싶은 거 아니냐 말이지.

책안나 솔직히 말해서 아주 틀린 말은 아니야. 하지만 그 이유가 전부는 아니지. 그동안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지? 꽤나 열심히 살았어. 그건 너도 인정하잖아. 지금까지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사업을 하면서 다양한 경험과 노하우를 쌓아왔어. 사람을 상대하고 고객이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만족시키기 위해 무얼 해야 하는지 고민해 왔어. 물론 성격은 다르지만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아. 현실을 모르지 않고 어려움이 따를 거라는 것도 알아. 책방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에 대해 지금도 공부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야.
 
겁나 진짜 이유가 뭐야?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주변 사람들을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한 활동. 뭐 그런 거창한 이유라도 있는 거야?

곳곳에 생겨난 작은 책방들이 저마다 흔들리지 않는 철학을 갖고 버텨 준다면 책방을 찾는 사람들에게 그 힘을 나눠 줄 수 있다. 그러면 이 사람들이 또다시 저마다 자신의 주변을 작게라도 변화시켜 나간다.

- 작은 책방 꾸리는 법 / 윤성근 -


책안나 진짜 이유는 자기만족이야. 지금껏 돈을 좇아서 아등바등 살아왔어. 근데 계속 그렇게 사는 건 좀 시시한 거 같아. 남들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조금 근사해 보이며 살아가는 게 그렇게 철없는 생각은 아니잖아. 어차피 우린 겁이 많아서 책방을 한다고 해도 그 과정은 무척 신중할 거야.

겁나 알겠어. 무슨 말인지.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야. 우리가 약속한 것들이 있잖아. 앞으로 2년 동안은 아무 생각 없이 묵묵히 하기로 한 그거.  지금부터 짬짬이 그리고 천천히 책방 창업을 준비해. 우선순위는 우리 약속이 먼저야. 그리고 정확히 2년 후에 작은 책방을 열어보자.

책안나 지금 내가 좀 안달 난 상태라 2년 후라고 생각하니 좀 답답하지만 약속은 약속이니 그렇게 하지. 그렇지만 2년 후에는 이런저런 핑계로 미루거나 없던 일이 되진 않았으면 좋겠어.

겁나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