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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레가 좋아
    담배 한 개비 2023. 8. 30. 15:12

    집에서 만들어 먹는 카레가 좋다. 마트에 진열된 다양한 카레들이 있지만 옛날에 먹던 약간 매운맛 오뚜기 카레가 제일 좋다. 어릴 적 혼자 집에 있을 때 엄마가 커다란 냄비에 한가득 카레를 끓여 놓고 가셨다. 돼지고기와 당근, 감자, 양파가 들어간 카레. 찬 밥에 먹어도 맛있고 뜨거운 밥에 먹어도 맛있다. 한 그릇을 먹고 나면 또 밥을 담고 카레를 붓는다. 밥이 떨어지면 카레만 먹는다. 냄비에 바닥이 보인다. 냄비를 혀로 핥는다. "우리 엄마 설거지 하기 편하겠지?" 

     

    카레는 돼지고기, 당근, 감자, 양파의 조합이 으뜸이지만 돼지고기가 없을 땐 소시지나 스팸을 넣어도 맛있다. 당근은 안 넣어도 맛에는 큰 지장은 없다. 감자가 없으면 살짝 아쉽지만 괜찮다. 고기나 소시지도 없으면 대신 참치 통조림으로 대체도 가능하다. 먹다 남은 치킨이나 튀김도 잘 어울린다. 계란 프라이를 살짝 튀기듯이 바삭하게 익혀 함께 먹어도 맛있다. 밥이 없을땐 라면을 넣는다. 라면도 없을 땐 카레만 먹는다.

     

    만드는 방법도 간단한다. 커다란 냄비에 기름을 살짝 두르고 불을 가스레인지 불을 켠다. 고기를 넣고 볶는다. 고기 핏기가 사라지면 당근, 감자를 넣고 볶는다. 당근과 감자가 어느 정도 읽을 때쯤 양파를 넣고 계속 볶는다. 어느 정도 다 익으면 물을 붓는다. 물이 팔팔 끓으면 물에 갠 카레를 넣는다. 요즘 카레는 따로 물에 개지 않아도 잘 녹는다. 재료가 냄비 바닥에 눌어붙지 않게 잘 젖는다. 

     

    먹을 때는 먼저 밥통에 뜨거운 밥 한 공기를 그릇에 담아 냉동실에 넣는다. 다시 넓은 접시에 다시 뜨거운 밥을 담고 그 위에 뜨거운 카레를 덮는다. 호호 불어 가며 맛있게 먹는다. 다 먹으면 냉동실에 넣은 식은 밥을 꺼내 다시 비운 접시로 옮긴다. 살짝 식은 카레를 덮는다. 시원한 카레 맛이다. 맛있게 먹는다. 고혈압에 당뇨도 걱정해야 하는 나이다. 탄수화물을 제한한 필요가 있다. 빈 접시에 카레만 담는다. 맛있게 먹는다. 남은 카레는 냄비 뚜껑을 닫고 계절에 따라 그냥 두거나 냉장고로 옮긴다. 숙성 카레가 된다. 내일 아침에 먹는다.

     

    아내나 아이들은 나처럼 카레를 좋아하지 않지만 간혹 카레를 먹게 될 때가 있다. 아쉽지만 아이들이 어려 오뚜기 카레 순한 맛을 끓인다. 아이들 영양을 생각해 밥과 카레 위에 계란 프라이도 하나 얹는다. 맛있게 카레를 먹는다. 제일 먼저 접시를 비우고 한 접시 더 한다. 냄비가 비면 냄비에 바로 밥을 조금 넣고 냄비에 바닥과 옆면에 묻는 카레를 밥과 비벼 마무리한다. 평상시 아이들에게 남기지 말고 다 먹으라 말하지만 내심 남기길 바란다. 큰 애가 그만 먹고 싶다고 하면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처음 일본 여행을 갔을 때 아는 사람을 따라 카레를 먹으러 갔다. 됴쿄 쿠니타치 역 근처에 있는 카레 가게다. 아는 사람은 내가 카레 좋아하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나에겐 곱빼기를 시켜줬다. 그동안 내가 먹었던 노란 카레가 아니라 갈색 카레다. 재료를 잘게 썰어 넣어서 인지 뭐가 들어간 지는 모르겠다. 그 후로 일본에 여섯 번 갈 때마다 그 집에는 꼭 들렀다. 돌아올 때는 일본 마트에 들러 다양한 카레가루를 사 왔다. 

     

    카레를 많이 먹거나 하루 세끼를 먹을 때 안 좋은 점이 있다. 우선, 카레맛 신물이 넘어온다. 카레에 들어간 강황 성분 때문인지 속이 쓰릴 때가 있다. 이럴 땐 며칠 쉬어줘야 한다. 또 하나 안 좋은 건 살이 찐다. 인터넷 어딘가에서 카레가 다이어트 식품이라고 하는데 나는 너무 많이 먹게 된다.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다. 

     

    카레가 좋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돌아오면 부모님은 모두 일 나가시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가끔은 곰탕 같은 걸 커다란 냄비에 끓여 놓으셨고 또 가끔은 같은 냄비에 카레를 끓여 놓으셨다. 집에 돌아와 부엌에 냄비 뚜껑을 열어보고 카레가 있으면 신났다. 혼자만의 시간이 조금 외로웠지만 그래도 카레를 먹으면 기분이 좋다.

     

    나는 못 말리는 카레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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