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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헛헛한 하루
    담배 한 개비 2023. 9. 22. 17:26

    모처럼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 아내가 운전하는 차 앞 타이어 마모가 심해 서비스 센터에 타이어 교체를 예약을 한 날이다. 빈 속에 차를 몰아 일산 서비스 센터로 차를 몰았다. 도착해 차를 맡기고 2층에 있는 고객 대기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TV에 나오는 여자 골프를 구경한다. 짧은 치마를 입은 한 여성 골퍼가 눈에 들어온다. 퍼팅을 마친 후 홀에 들어간 골프공을 빼기 위해 허리를 숙인다. 아슬아슬하다. 

     

    그렇게 조금 있다보니 액정에 031 지역번호가 찍힌 휴대폰 진동이 울린다.  타이어 교체를 위해 바퀴를 분해하는데 맞는 공구가 없어 작업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타이어만 구매하기로 한다. 차 뒷좌석에 타이어 2개를 싣고 다시 차를 몰다 <타이어 프로>가 눈에 띄어 주차장에 차를 세운다. 작업장에서 위아래로 검은색 작업복을 입은 장발에 다부진 몸의 남성 한 명이 타이어를 갈고 있다. 카운터 쪽으로 걸어가니 장발과 똑같은 옷을 입었지만 너무 몸에 딱 달라붙어 약간 민망한 차림의 뚱뚱한 남성이 나를 맞이한다. 소규모 카센터나 정비소를 가면 아무래도 경계하게 된다. 차량 정 비란 게 전문 기술의 영역이다. 위험하니 당장 고쳐야 한다고 하면  거절할 재간이 없다. 예전 인천에서 타이어 2개를 갈러 갔다 휠 4개를 모두 교체한 경험도 내 경계심에 한몫했다.

     

    정황 설명을 한다. 대기 실에 앉아 휴대폰으로 뉴스를 보고 있는데 또 문제가 생긴 것 같다. 뚱뚱한 남자가 땀을 뻘뻘 흘리며 들어와 잠시 와달라고 한다. 바퀴를 고정하는 너트 하나가 마모가 돼서 풀 수가 없어 작업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너트와 맞물리는 놈 안쪽이 회오리 모양으로 된 걸로 강제로 풀고 너트를 새로 바꿔야 하는데 본인들에겐 맞는 너트가 없다는 말이다. 젠장. 앞서 다녀온 서비스센터에서 풀어 보려고 하다 생긴 문제인 거 같다. 다시 운전대를 잡고 시동을 건다. 장발과 뚱뚱이가 도로 진입로까지 나와 나란히 서 나를 배웅하며 고개 숙여 인사를 한다. 타이어는 못 갈았지만 뭔가 모르게 믿음이 가는 친구들이다. 

     

    뚱뚱이의 설명에 의하면 회오리 모양으로 된 공구를 보유하고 차 휠에 맡는 너트가 있는 정비소를 찾아야 한다.집으로 가는 길 도로 맞은편 <넥센 타이어> 가게가 크게 보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차를 유턴한다. <넥센 타이어> 가게 앞에 차를 대충세우고 작업 중인 기사님에게 다시 정황 설명을 한다. 대답 없이 갑자기 작업장 쪽으로 걸어가더니 아까 <타이어 프로>에서 봤던 공구와 비슷한 것들을 몇 개 들고 오신다. 회오리 모양에 그것을 바퀴 너트 위에 대 본다. 너트와 휠 사이 간격이 너무 좁아 전혀 들어가질 않는다. 회오리 모양이 아닌 것으로 껴보더니 이건 테두리가 너무 얇아 공구가 망가진다고 한다. 그러면서 한 번 시도를 해본다. 역시나 그것이 망가졌다며 웃으면서 아쉬워한다. 골치 아프게 된 거 같다며 다른 곳을 알아보라고 한다. 회오리 모양이 아닌 그것에 망가짐에 미안함을 전달하며 다시 운전대를 잡는다.

     

    아침엔 선선했던 날씨가 정오가 되어 가면서 차장 밖에서 내리쬐는 햇볕이 뜨겁다. 집 근처 갓길에 차를 세우고 비상등을 켠다. 휴대폰으로 근처 카센터를 검색한다. 수리가 가능할 것만 같은 느낌의 몇 곳에 전화를 걸어 간략하게 문제를 설명하고 끊기를 반복한다. 그중 한 곳에서 가까이 있으면 한번 와보라고 한다. 네비를 찍어보니 5분 거리에 있는 곳이다. 도착해서 기사님에게 추가적인 설명을 하니 작업장 어디론가 사라졌다 손에 아까 본 회오리 모양의 그것과 비슷한 놈들 서네개를 들고 왔다. 자동차 바퀴 너트 사이로 대보더니 간격이 너무 좁아 망치로 강제로 두들겨 넣으면 될 거 같은데 자동차 휠에 흠집이 많이 날 거라고 한다. 지긋지긋하다. 상관없으니 그냥 풀어달라고 한다. 다른 곳과 약간은 고급스럽게 생긴 회오리 모양의 그것을 너트 위에 대고 망치를 쿵쿵 두들긴다. 잘 걸렸는지 손으로 흔들어 보더니 그것에 쇠파이프 같이 생긴 기다란 놈을 연결한다. 쇠파이프에 체중을 싣고 '끙' 하는 소리를 내며 돌러더니 너트를 풀렸다.

     

    기사님이 공구를 정리하면서 "우리는  같은 크기에 너트가 없어 센터에 주문을 해야 해요." 라며 직접 구해 보면 어떻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너트 하나 빼고 달려도 상관없다고 한다. 아내에게 너트 하나 빼고 달려도 상관없다고 차를 건네주면 욕먹을 노릇이며 또 저 너트 하나를 구하기 위해 방황할 생각을 하니 막막하다. 차를 놓고 가고 시간 좀 걸려도 상관없으니 주문해서 달아 달라고 부탁을 했더니 알았다고 한다. 도망가듯 카센터를 빠져나와 아내에게 설명을 하고 터벅터벅 집으로 걸어간다. 땀은 흐르고 오줌이 마려워 걷는 속도를 올려 서둘러 집에 도착한다.

     

    어제 먹다 남은 카레 냄비에 찬 밥을 한 주걱 넣고 비빈다. 휴대폰을 켜 어제 있었던 민주당 이재명 체포 결의안 가결 소식 관련 후속 기사를 본다. 나는 오랫동안 민주당 지지자다. 마음이 헛헛하다. '나쁜 일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세상 모든 일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나쁜 일도 한편으론 꼭 나쁜 것만은 아니고 좋은 일도 마찬가지다.' 인생을 평균 수명 절반 좀 넘게 살다 보니 얻은 나름의 깨달음이다. 타이어 좀 갈겠다고 지긋지긋한 마음으로 돌아다녔다. 하지만 걸어오면서 생각해 보니 오전에 카센터에서 만났던 사람들 모두 신기하리 만큼 친절했다. 다들 친절하고 고마웠다. 마음속에 있던 카센터 기사에 대한 내 부정적인 감정도 줄었다. 이재명 체포 결의안 가결 소식도 한편으론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지지자들의 분노의 크기만큼 결집도 강해질 것이다. 검찰의 폭주 제동에 대한 명분도 강해질 것이다. 다만 자연인 이재명이 불쌍하다. 고독할 것이다. 지나온 과거 이상으로 미래에도 고독에 시간은 이어질 것이다. 미안하고 안쓰럽다. 

     

    배는 부르지만 여전히 마음이 헛헛하다. 어제 먹다 남은 짬뽕 국물에 또 밥을 한 주걱 말아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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